한옥을 마당에서 바라보면 지붕 끝이 기둥과 벽보다 바깥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붕이 건물 밖으로 내밀어진 부분을 처마라고 합니다.
처마는 지붕의 형태를 이루는 건축 요소이지만, 햇빛과 비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정도에도 영향을 줍니다. 특히 계절에 따라 태양이 떠 있는 높이가 달라진다는 점은 전통 가옥에서 처마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옥에서 처마를 바깥쪽으로 내민 까닭
전통 가옥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실내 온도를 기계로 일정하게 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집의 방향과 창문의 위치, 지붕의 형태 등을 생활환경에 맞게 구성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처마는 이러한 건축적 고려가 반영된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둥 밖으로 뻗은 지붕은 벽과 창문 앞에 그늘을 만들고, 비가 내릴 때는 빗물이 건물 가까이 떨어지는 것을 어느 정도 줄여 줍니다.
다만 모든 한옥의 처마가 같은 길이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건물의 규모와 지붕 구조, 지역의 기후 등에 따라 형태와 길이가 달랐습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처마가 햇빛을 조절하는 원리를 이해하려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태양의 높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여름철 낮의 태양이 높이 떠 있고, 겨울철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햇빛이 들어옵니다.
이 차이 때문에 같은 처마 아래에서도 계절에 따라 그늘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 여름에는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햇빛을 가립니다
여름 한낮에는 태양이 높이 떠 있어 햇빛이 비교적 가파른 각도로 내려옵니다.
건물 밖으로 길게 나온 처마는 이러한 햇빛을 가려 창문이나 마루 주변에 그늘을 만들 수 있습니다.
햇빛이 실내로 직접 들어오는 양이 줄어들면 바닥과 실내 물건이 햇볕에 의해 달아오르는 정도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특히 남쪽을 향한 건물에서는 여름철 높은 태양의 위치와 처마의 깊이가 햇빛을 가리는 범위에 영향을 줍니다.
그렇다고 처마가 여름 햇빛을 모두 차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침과 저녁처럼 태양의 위치가 낮아지는 시간에는 햇빛이 처마 아래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 겨울에는 낮은 각도의 햇빛이 실내로 들어옵니다
겨울에는 낮 시간에도 태양의 높이가 여름보다 낮습니다.
남쪽을 향한 창문을 기준으로 보면, 낮은 각도로 비치는 햇빛은 처마 아래를 지나 실내까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온 햇빛은 방 안을 밝히고 바닥이나 물건의 표면을 따뜻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같은 처마라도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고 겨울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 채광은 건물의 방향과 처마 길이뿐 아니라 창문의 높이, 주변 건물이나 나무의 그림자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처마는 비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햇빛을 조절하는 것만이 처마의 역할은 아니었습니다.
전통 가옥에서는 목재와 흙 등 자연에서 얻은 건축 재료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런 재료를 오래 유지하려면 비와 습기로 인한 손상을 줄이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지붕 끝이 벽보다 바깥으로 뻗어 있으면 지붕을 따라 내려온 빗물이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흐르게 됩니다. 처마 아래의 문과 벽면에 비가 직접 닿는 정도도 줄일 수 있습니다.
– 처마 아래에 생기는 공간
처마가 길게 나온 집에서는 벽이나 문 앞에 비와 햇빛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마루가 있는 한옥에서는 이러한 그늘이 마루 주변의 생활환경에도 영향을 줍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처마가 문 앞의 빗물을 일부 막아 주고, 맑은 날에는 그늘이 생겨 마루나 문 주변에서 머물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비가 비스듬히 내리는 경우에는 긴 처마 아래까지 빗물이 들어올 수 있으므로, 처마만으로 비바람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마의 길이는 집마다 같지 않았습니다
처마가 길수록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붕을 멀리 내밀면 그늘이 넓어질 수 있지만, 필요한 시기에 들어와야 할 햇빛까지 가릴 수도 있습니다. 지붕을 받치는 구조와 건축 재료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처마의 길이는 집이 놓인 환경과 건물의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 지역과 건물 구조에 따른 차이
전통 가옥은 지역마다 기온과 강수량, 바람의 조건이 달랐고 집을 짓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한 집이 남쪽을 향해 있는지, 마당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주변에 다른 건물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에 따라서도 햇빛을 받는 조건이 달라집니다.
처마는 이러한 여러 조건을 고려해 만들어진 건축 요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붕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서까래만으로 처마를 구성한 형태를 홑처마라고 하며, 서까래 끝에 부연이라는 부재를 덧대어 만든 형태를 겹처마라고 합니다.
겹처마는 처마를 더 깊게 구성하는 데 활용되었으며, 전통 건축물의 형태와 성격에 따라서도 사용 방식이 달랐습니다.
처마에 담긴 옛사람들의 생활 방식
한옥의 처마는 지붕 끝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역할과 함께, 집 안팎의 생활환경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태양이 높이 뜨는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고, 태양이 낮은 겨울에는 햇빛이 실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특징이 있었습니다. 비가 내릴 때는 벽과 창문 주변으로 들이치는 빗물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옥의 처마에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생활 공간을 구성했던 전통 건축의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